[회원동정] 박대성 화백 뉴욕 개인전 ‘불밝힘굴’ | 2015.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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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조회수 : 5,445 | |||
한겨레 게재일자: 2015년 2월 2일
뉴욕서 ‘불밝힘굴’ 개인전 개막 소산 박대성 화백 소산 박대성(70)의 개인전 <불밝힘굴>(케이브 오브 라이트)이 지난달 22일 뉴욕 맨해튼 57번가 코리아 소사이어티 8층에서 개막했다. 새달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불밝힘굴> 등 100~150호 크기의 4점을 포함해 작품 30여점이 선보인다.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1957년 만들어진 비영리 민간단체로 한-미 우호를 위한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인 수묵작가로는 첫 뉴욕 개인전이다. 서구인에게 지필묵, 음양조화는 중국이나 일본의 것으로 통하는 마당에 ‘고대의 꽃’이라 할 신라 경주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미술에서의 진짜 ‘케이팝’의 존재를 알린 것이다. 미술의 최첨단 뉴욕과 천년 고도 경주의 만남도 뜻깊다.
박 화백 개인에게도 뉴욕 전시는 특별하다. 1994년 쉰 나이에 ‘유학’을 왔다 실망해 6개월 만에 떠나왔던 ‘그곳’에서 20년 만에 자기 이름 석자를 내걸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한국 수묵화가로 첫 개인전
귀국 이후 천년고도 경주 정착해 탁마
‘아트 인 뉴욕’에 적을 두고 있던 그때, 먹을 ‘인디언 잉크’, 붓을 ‘재패니스 브러시’라고 부르더라고 했다. 전시 개막식에서 그는 미국인 청중을 향해 “먹은 인디언 잉크가 아니라 모든 색을 포함하고 천년을 가도 변치 않는 ‘동양의 정신’이다”라고 설명했다.
전시 작품도 각별하다. 햇빛 비치는 석굴암과 달빛 비치는 불국사가 대조되는 <불밝힘굴>, 보름달 아래 정자와 연꽃이 어우러진 <만월>, 캘리그래피가 금강역사의 두상을 감싼 <금강역사>. 박 화백은 현지인들이 <우공투양도>에 특별히 관심을 보이더라고 전했다. 황소 두 마리가 대거리를 하는 <우공투양도>는 가로 4m가 넘는 대작으로, 월가의 상징인 황소를 염두에 두었다.
-<우공투양도>가 인상적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그렸다. 하지만 소에 대한 관심은 오래되었다. 어려서 소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우리 인류는 소의 등에 업혀 먹고살았다. 농업혁명도 소를 이용한 밭갈이에서 시작되었다. 요새 와서 식용으로 전락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는 농부의 동반자이고 농가의 재산이었다. 경주 남산 아래로 이사한 이후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경주가 불국정토인데, 함부로 먹을 수 있겠나. 나 하나라도 고기를 끊고 맑은 정신으로 살고 싶었다. 그 덕에 더 건강해지고 작품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시의 이름으로 삼은 <불밝힘굴>도 그렇다.
“석굴암 본존불은 동짓날 떠오르는 첫 태양의 방향과 일치하고 불국사 대웅전 본존불은 정월 대보름달의 방향과 일치한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조성한 신라의 재상 김대성은 최고의 건축가다. 해와 달을 갖고 놀지 않는가. 전생과 현생의 부모를 위해 각각의 절을 지은 것이나 음양의 조화를 이룬 것이나 기가 막힌다. 어떤 건축가도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다. 미국인들은 의미를 잘 모를 거다. 하지만 실경을 바탕으로 한 추상산수의 역동성은 알 거다.”
-왜 경주인가?
“경주는 다이아몬드다. 인도, 로마 문명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을 건너와 완성된 곳이다. 대표적인 것이 석굴암이고 불국사다. 경주는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어서 좋은 기운이 모인다. 사계절이 있지만 겨울엔 춥지 않고 여름에 그다지 덥지 않다. 어자원이 풍부한 동해가 가깝고, 분지형 넓은 들에서 물산이 풍부하다. 신라가 천년 동안 수도로 삼아 문명의 꽃을 피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이사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이사하기까지 15년 세월을 헤매고 다녔다. 인도, 이스탄불, 카이로, 베니스(베네치아) 등 문명이 꽃핀 곳을 찾아다녔다. 한국만큼 좋은 곳이 없더라. 산천경개가 아름답고 사계가 뚜렷한 것이, 한국은 축복받은 곳이다. 뉴욕에서 돌아오자마자 경주를 포함해 제주, 강릉, 한려수도 등을 누볐다. 경주만한 데가 없었다. 작업실을 구해 3년 동안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다가 남산 밑에 집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계약했다. 부근에 두 곳의 왕릉이 있어 기운도 좋다. 작가한테는 ‘어디서’가 매우 중요하다.”
-불국사나 석굴암도 읽는 게 가능한가?
“예나 지금이나 뭘 지을 때 지세와 방향을 따진다. 천년이 지나도 땅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땅 모양과 건물의 놓임을 보면 애초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일종의 땅에다 쓴 기록이다. 불국사는 긴 회랑이 대웅전을 둘러싼 독특한 구조인데, 긴 회랑은 용의 몸, 입구의 두 돌계단이 발톱의 형국이다. 진리의 세계로 가는 용화선을 상징한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포석정을 보면 그곳이 국점을 치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그 모양이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영지버섯이다.”
-땅읽기와 작품은 무슨 관계인가?
“땅에는 누천년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지혜가 녹아 있다. 말하자면 명필이 쓴 글씨다. 나는 산과 물을 읽고 그것을 신축적으로 작품으로 끌어들인다. 자연에서 글자와 문장을 읽어내는 것이다. 나는 한자가 상형문자화 하는 과정을 거꾸로 밟는다. 사람들이 내 작품에서 괴기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런 탓이다.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명필이 그린 그림이다. 그게 나의 지향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김종욱씨 제공
출처:한겨레(문화 일반) /원문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76453.html 참조:코리아소사이어티 홈페이지 전시 소식 http://www.koreasociety.org/arts-culture/exhibition/the_paintings_of_park_dae_su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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